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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필드워크/길을 걷다

인월-금계 구간을 걷다

 

 

 

산허리에 잔뜩 머금어 있는 비구름이 금방이라도 만수천을 넘어 이 곳 대동마을을 덮어버릴 기세다.

지리산 둘레길 첫 시작은 매동마을에서 창원마을까지 걷는 걸로 시작을 한다.

원래 이 구간은 지리산둘레길 제3구간에 속한다.

제3구간은 인월에서 금계구간이며, 매동마을에서 창원마을은 제 3구간 안에 있다.

매동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둘레길을 시작했다.

인월에서 금계구간은 길이가 19.3km로 현재 개통된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긴 구간이며,

오늘 걸을 길은 그 구간에서 약 8~9km 거리이다.

 

 

 

 

 

 

 

둘레길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둘레길을 닮았다.

모나지도 않고 튀지도 않게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

솔방울 모양처럼 생긴 표지는 지리산 둘레길 로고이다. 솔방울의 다섯가지 색깔은 지리산의 5개 시군을 나타낸다.

빨간색은 남원, 주황색은 산청, 노란색은 하동, 초록빛은 구례, 파란색은 함양이다.

그래서 매동마을쪽의 표지목에 있는 띠는 빨간색이고 창원마을 부터는 파란색이다.

 

 

 

 

 

 

매동마을에서 첫발을 딛었다.

따뜻한 오월의 햇살은 둘레길 입구를 지키는 백구에게도

피할 수 없는 유혹인 것 같다.

외부인이 와도 좀처럼 경계를 하지 않는다.

아마 지난 휴일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 둘레길을 지나갔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구경은 귀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백구집 뒤로 참나무에 하얗게 버섯이 자라고 있다.

 

 

 

 

 

 

 

 

매동마을의 정확한 행정주소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이다.

마을 주위에는 야트막한 산자락에 소나무숲과 대나무숲이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든다.

매동마을의 유래를 찾아보면,

옛날에 어떤 스님이 길을 가다가 이 마을을 보고 마치 매화를 닮았다 하여 매동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서쪽으로 낙동강 상류인 광천이 흐르고 있으며, 논농사와 밭농사를 주로 짓고 있다.

 

 

 

 

 

 

 

 

탱자꽃은 바람이 불면 하얗게 돌아갈 것 같은 바람개비를 닮았다.

무시무시한 가시사이에 하얗게 피어난 꽃잎을 보면 지고지순한 사랑이 떠오른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사랑을 꽃피운다.

 

 

 

 

 

 

 

 

 

 

매동마을 뒷산에 오르니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봉우리에는 벌써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옮겨 심은 고추 모종은 봄비를 갈구하고 있다. 밭에는 고사리가 한 뼘 이상 올라왔다.

농작물 지킴이 표지판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둘레길을 걸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면 남의 피땀을 함부로 빼앗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매동마을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산허리를 오르내리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고목나무를 만났다.

가치를 위해 밑둥을 다 내어준 게 어머니를 닮았다.

중황마을로 가던 옛날 사람들도 다 이 나무를 만났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둘레길을 지나가는 길에는 쉼터가 많이 있다.

중황마을 가는 길에 처음으로 작은 쉼터에 들렀다. 계곡물을 그대로 받아 동동주를 담궈 놓았다.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는 물을 마시고 가라고 한다. 갓 얼은 살얼음처럼 물맛이 시원하다.

물을 들이키고 나니 동동주 맛이 궁금해진다.

지리산 뱀사골 동동주라고 붙이 이 술은 톡쏘는 거친 맛이 아닌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자락을 닮았다.

술맛이 시간을 먹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람하나 지나가면 족한 길이다.

바람에 송화가루가 물방울처럼 퍼진다.

 

 

 

 

 

 

 

 

 

 

 

 

 

 

 

 

 

 

다랭이논은 다락논,다랑논,다랭이논,다랑이논 등 부르는 이름도 여러가지이다.

척박한 산비탈에 돌을 층층히 쌓고 만든 것이 다랭이논이다.

주변지형에 맞추어 쌓아올렸기 때문에 논의 형태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켜켜히 쌓아 올린 돌의 무게가 곧 삶의 무게이다.

어느 성벽보다 더 견곡하고 단단하다.

등구재로 올라가는 길은 이렇게 다랭이논의 속살을 만나는 시간이다.

모내기를 위해서 가둬 둔 논에 산자락이 반영된다.

조금 있으면 이 곳은 어린 모들로 채워질 것이다.

 

 

 

 

 

 

 

 

지리산에 머물러 있던 먹구름이 중황마을을 거쳐 동구재까지 밀려왔다.

그래도 아직까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유롭다

비는 지나갈 것이지만 길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먹구름이 소낙비로 바뀌었다.

잠시 나무아래 앉아 비옷을 입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어디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비가 오는 중에도 나비는 날개짓을 멈추지 않는다.

 

 

 

 

 

 

 

 

스쳐지나간 소나기는 가끔 맑은 시야를 가져다준다.

아직 할 일이 남았는지 지리산 봉우리 정상에는 먹구름이 머물러 있다.

화창한 날에는 천왕봉, 제석봉, 형제봉, 벽소령, 덕평봉 등 지리산 전체 능선을 볼 수 있다.

가을에 황금 다랭이논과 지리산 서북 주능선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등구재(650m)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다랭이논과 지리산을 뒤로 하고 드디어 등구재에 오른다.

중황이레서 올라가는 길은 다랭이논 논둑길을 따라 오르는데 그 경사는 심하지 않지만,

마천면 창원리에서 올라오는 길은 제법 그 경사가 심하다.

거북이 등을 닮아서 등구라고 불리는 이 고개는 경남 창원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인월장으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

 

 

 

 

 

 

 

 

누렇던 황토길이 소나기로 인해 어둑어둑 변했다

등구재 내려가는 길에 만난 산철쭉이 어둑한 길과 묘한 색깔의 대조를 이룬다.

느리지만 보는 즐거움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등구재를 내려서자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창원마을이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을은 바뀌었지만, 그 풍경은 참 익숙하다.

골짜기골짜기마다 다랭이논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등구재를 내려와서 처음 만나는 쉼터다.

허술하기는 해도 쉼터는 쉼터인데 주인이 안 보인다.

나중에 알아 본 결과 농사일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쉼터란다.

농사일 때문에 할아버지는 자리에 없고 양심에 따라 물건을 사가고 음식을 먹으면 된단다.

 

모양은 허술해도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존경스럽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참 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애기똥풀도 그중에 하나다.

노란색 꽃잎이 예쁜 이 꽃은 까치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비가 내리고 색깔은 더욱 선명해진다.

봄의 축제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떤 이는 내려가고 어떤 이는 올라간다.

길은 정해진 방향이 없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면 된다.

등구재에서 창원마을 내려가는 길은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더 이상 흙길을 밟지 못하는 아쉬움은 크지만 주변의 풍경은 아쉬움을 채우고도 부족함이 없다.

 

 

 

 

 

 

 

 

 

 

 

여행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만나는 일은 여행의 방점을 찍는 일이다.

비도 오고 궂은 날씨에서 더 이상 멋진 풍경은 없다고 내심 아쉬워하던 순간, 다랭이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농부를 만났다.

다랭이논 그 자체만 해도 아름답지만, 여기에 삶의 모습을 더하는 순간, 모든 것은 행운으로 바뀌었다.

물론 고된 삶의 땀방울을 아름답게만 보면 안되겠지만, 오랜 세월 이 산자락을 일구며 살아내신 농부의 삶은,

그 자체로선 존경받을만 하다고 하겠다.

 

 

 

 

 

 

 

 

 

아직도 지리산에는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다.

다랭이논 만큼이나 구불구불한 벼들을 보며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는 삶을 배운다.

 

 

 

 

 

 

 

 

 

 

 

창원마을 윗당산에 도착했다.

느티나무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던 자리가 이제는 쉼터로 바뀌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도착한 날은 오후 내내 비가 내려서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창원마을은 조선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내에 각종 조세로 거둬들인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고 해서,

창말(창고마을)로 불리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이름이 합쳐져 창원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창원마을은 백운산 자락에 위치하면서 오도재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오늘은 창원마을이 목적지이고 이곳 민박집에서 하루 묵기로 한다.

간간히 퍼붓던 비가 잠시 멈추었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창원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비바람에 드러눕는 꽃을 보았다.

 

 

 

 

 

 

 

 

 

천천히 마을입구쪽으로 걷다보면 아랫당산나무를 만날 수 있다.

수령이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로 마을의 수호신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아랫당산에서 다시 민박집으로 가는 길은 야트막한 돌담길이다.

가슴높이만 쌓은 것은 서로 소통하고 나누면서 산다는 뜻이리라.

작은 돌담 하나에도 절제와 겸손이 스며있다.

도시에 살면서 가두고 쌓기만 한 삶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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