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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눈 내린 성곽길을 걷다 - 두 번째 이야기

 

화서문을 나와서 이제 본격적으로 화성의 서쪽을 향해 걷습니다.

화서문에서 서북각루 가는 길은 가을 억새가 아름다운 길입니다.

억새 은빛물결이 하얀 설경에 묻혔지만, 이 것 또한 나름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서북각루는 화서문의 서남쪽 산기슭에 있습니다. 아래는 화서공원입니다.

굽이 돌아가는 성벽이 돌출되어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가까운 숙지산을 비롯하여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곳입니다. 

 

 

 

 

 

 

 

 

 

 

 

서북각루에서 서일치 가는 길은 모두 억새밭입니다.

서쪽으로 해넘이가 시작되면 은빛억새가 물결처럼 일렁이는 곳입니다.

바닥에 하얀 솜이불을 덮은 억새들이 시련의 계절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억새밭을 지나 서포루로 향합니다.

서일치를 지나서 서포루 가는 길은 본격적으로 팔달산을 오르는 길입니다.

앞사람이 지난 발자국이 그대로 길이 됩니다.

 

 

 

 

 

 

 

 

 

 

 

단촐한 서포루 팔작지붕에도 고드름이 달렸습니다.

넘어가는 해는 힘이 없어서인지, 기와지붕의 눈을 녹이지 못합니다.

까맣게 구워진 서포루 벽돌이 성벽의 자연석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팔달산 정상에 다다들수록 길은 점점 좁아집니다.

 

숲은 모든 것을 감싸줍니다.

작은 가지하나가 자신보다 몇 배 더한 무게를 견뎌줍니다.

 

 

 

 

 

 

 

 

 

 

 

 

 

화성 성곽길에서 가장 신비한 서이치에 올랐습니다.

늙은 노송하나가 홀로 성벽을 지키고 있는 곳입니다.

노송이 바라보는 방향이 화성행궁 방향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한 바퀴 돌아보면 그  신비로운 자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얗게 쌓인 눈송이는 소나무의 연륜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왜 이렇게 자랐을까 궁금증이 더 커집니다.

 

청령포에서 만난 노송도 슬픈 단종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충절과 기개를 상징하던 소나무가 어디든 꼭 하나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성벽 너머 행궁에 기거하던 정조를 향한 그리움에, 마지막 예를 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벽을 버티고 있는 서이치를 지나 서암문 가는 길은 바위길입니다.

이곳은 수원의 숙지산과 더불어 화성의 축성을 위해 돌을 뜬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돌을 뜨는 자리를 '부석소'라고 하는데, 팔달산에서만 1만3천900덩어리의 돌을 떠냈다고 합니다.

부석소에서 떠낸 돌을 치석소로 보내 성곽을 쌓기 위한 일정한 모양으로 다듬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지형도 험해 성벽이 다른 곳보다 높지 않지만 올라가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바윗길 험한 성벽을 돌아 팔달산 정상에 다다를 즈음 만나는 문이 서암문입니다.

암문은 말 그대로 몰래 드나드는 문입니다.

출입문이 북쪽으로 났기에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성의 서쪽에서 행궁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서암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 서장대에 오릅니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에 올랐습니다.

서장대는 화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서장대 왼쪽에 있는 건물은 서노대입니다.

 

 

 

 

 

 

 

 

 

 

 

 

 

장대는 장수의 지휘대를 말합니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는 2층의 누각입니다.

아래층은 모두 열려 있으며, 위층은 가운데 계단을 타고 올라가 사방을 살필 수 있도록 판자를 깔아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장대 왼쪽에 보이는 기둥은 외간이라는 것입니다.  외간은 깃발을 거는 곳입니다.

깃발의 모양으로 서장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멀리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서장대에서의 군사지휘는 왕이 직접 행하였는데, 그 절차와 훈련내용은 함부로 바꿀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서장대에서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치른 을묘행차 때 장대한 군사 사열식인 성조식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정조가 직접 친필로 '화성장대'라는 현판을 썼는데, 20세기 초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서장대는 2006년 5월 1일 화재로 불탔는데, 11개월 만에 복원을 완료하고 옛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서장대에서는 화성 성곽 전체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성곽길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멀리 장안문의 지붕도 볼 수 있습니다.

 

 

 

 

 

 

 

 

 

 

 

 

 

서장대 정상에서 바라보는 화성행궁 설경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 20년(1796년)에 팔달산 동쪽기슭에 세운 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집입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화산릉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쉬어가던 곳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실제로 머무른 곳이고, 더욱이 화성을 대하는 정조의 배려는 각별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행궁 중에서도

최대규모인 620여 칸으로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화성행궁 옆에는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해마다 제를 지내는 건물인 화령전이 있습니다.

순조는 아버지 정조의 효성을 본받기 위해 순조 1년(1801년)에 화성행궁 옆에 건물을 짓고 '화령전'이라고 하였습니다.

건물에는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 놓은 정전인 운한각을 비롯하여, 이안청,재실,전사청,향대청,제기고,외삼문,내삼문,중협문이 있었으나,

향대청과 제기고 건물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팔달산 정상의 눈꽃이 길게 피었습니다.

 

 

 

 

 

 

 

 

 

 

 

 

 

 

 

 

 

 

정상에는 뜬금없이 세계 도시의 거리이정표가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위한 소소한 재미을 위해 만든 것 같습니다.

리오데자네이로가 남극점보다 더 멀리 있습니다.

 

 

 

 

 

 

 

 

 

 

 

 

서장대에서 서남암문 가는 길은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서삼치 위로 머리를 내민 소나무의 설경이 아름답습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서남암문입니다.

서남암문을 통해서 나가면 서남각루(화양루)로 가게 됩니다.

 

 

 

 

 

 

 

 

 

 

 

 

 

 

서남암문은 화양루로 나가는 암문으로써 유일하게 암문위에 포사 1 칸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동암문, 북암문과 비교하여 모양이 완연히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남암문이 있는 곳은 팔달산의 한쪽 높은 곳으로 성의 서남 방향 조망이 좋기 때문에,

암문 중 유일하게 적을 감시하는 포사를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서남암문을 나와서 서남각루(화양루) 가는 길입니다.

 

 

 

 

 

 

 

 

 

 

 

 

 

 

 

 

 

서남각루는 화양루라고도 하는데, 서남암문의 남쪽으로 멀리 떨어지고 높은 지점에 우뚝 서있습니다.

이 곳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인데, 지형상 높은 지대의 잇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길게 용도를 만들고 서남각루를 지었다고 합니다.

서남각루 아래에는  수원향교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남암문 가는 길에는 치가 2개 있는데, 서남일치(용도서치)와 서남이치(용도동치)입니다.

수원화성에서는 모두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전방과 좌우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곽 시설물중의 하나입니다.

치(稚)는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치 위에는 누각이 없이 담만 쌓아 올린형태입니다.

남포루에서 팔달문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남치는 치의 형태와 모양을 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남암문 성벽의 설경

 

 

 

 

 

 

 

 

 

 

 

 

 

 

 

남포루를 내려다보면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팔달문이 보입니다.

팔달문의 수원의 중심이자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입니다.

 

 

 

 

 

 

 

 

 

 

 

 

 

 

보물 제402호 팔달문은 화성의 남문입니다.

정조 20년(1796년)에 완공되었으며, 화성을 남북방향으로 연결하여 주는 대표문입니다.

화성에서는 장안문이 북문이고, 팔달문이 남문이 됩니다. 형태와 모양은 장안문과 유사합니다.

장안문의 규모를 살펴보면 전체 너비가 약 46.2m,  높이는 약 17m,  두께는 약 12m입니다.  이 크기는 서울의 남대문과 너비는 같지만

높이는 약 1.5m높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도성의 성문보다 크게 지어졌다는 것은 정조의 화성에 대한 애착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건립된지 216년만인 2010년 9월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있으며, 올해 4월에 공사가 끝난다고 합니다.

불에 탄 숭례문이 4월에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어쩌면 동시에 역사적인 건축물 2개를 동시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팔달문 근처에는 9개의 전통시장이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시장으로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못골시장등이 있는데, 지동시장은 남수문 아래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동시장은 전통시장 중에서도 대표적인 먹거리 시장으로 순대가 유명한 곳입니다.

 

 

 

 

 

 

 

 

 

 

 

 

 

 

왼쪽은 최근에 복원된 남수문이며, 오른쪽은 동남각루 올라가는 길입니다.

북수문(화홍문)이 일곱개이 무지개형 홍예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해 남수문은 9개의 홍예를 갖고 있습니다.

남수문은 수원천의 하류인 만큼 북수문보다 강폭이 넓어져서 아치형의 수문이 더 필요했다고 합니다.

최근의 복원공사는 모두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동남각루는 수원천이 흐르고 있는 남수문에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오면 만나는 건물입니다.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원의 동남쪽을 두루 조망할 수 있습니다.

 

화성에는 모두 4개의 각루가 있습니다.  동남쪽에는 동남각루, 서남쪽에는 서남각루, 서북쪽에는 서북각루, 동북쪽에는

동북각루(방화수류정)입니다. 각루는 화성의 군영체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화성의 중심인 행궁에 신풍위를 두고 동쪽에 창룡위,

서쪽에 화서위, 남쪽에는 팔달위, 북쪽에는 장안위를 두었는데, 각루는 각 위를 보충해주는 동시에 지휘소의 역할을 합니다.

또한, 각루의 위치는 화성에서도 조망이 좋고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휴식공간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화양루 담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

 

 

 

 

 

 

 

 

 

 

 

 

 

 

 

동이포루 내부모습과 수원제일교회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입니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동북포루,북포루,서포루,동일포루,동이포루)중 하나입니다.

봉돈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되었습니다.

누각을 감싸는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누각의 내부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봉돈은 봉화연기를 피워올리는 돈대입니다.

봉돈은 화성행궁에서 마주 보이는 곳, 동이포루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벽돌로 쌓아올린 몸체 위에다가 다시 벽돌로 높게 쌓아 올렸으며, 성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 마치 치와 같은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봉돈의 주요 기능은 적의 침입을 행궁에 신속히 알리는 것입니다. 화성의 봉돈은 이 기능에 더해 자체적으로 적을 방어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봉돈의 주요구조를 살펴보면, 5개의 화두(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리는 곳)와 내부에 군사들이 거주하는 방과 기계들을 넣어두는 방이 있습니다.

봉화는 평상시에는 남쪽 첫 번째 화두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올려, 동쪽으로 용인 석성산 육봉으로 신호체계가 전달되고

서쪽으로 흥천대의 바다 봉화대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다른 4개의 화두에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봉화 신호체계를 찾아보면,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

적이 국경근처에 나타나면 봉수 2개

적이 국경선에 도달하면 봉수 3개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 4개

적과 아군사이에 전투가 발생하면 봉수 5개를 올린다고 합니다.

 

 

 

 

 

 

 

 

 

 

 

 

봉돈에서 다시 동이치-동포루-동일치-동일포루를 거쳐 처음 출발지인 창룡문에서 성곽길 걷기를 마칩니다.

낮은 기온에 눈까지 쌓여 있어 힘든 여정이었지만, 화성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