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안개가 무거운 하늘 때문에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날
슬프게 운다는 전설을 간직한 거창 당산리 당송을 찾았다.
당산리 당송을 찾아간 날은,
간밤에 내린 빗방울들이 대부분 땅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지만, 마지막 수확을 앞 둔 보리이삭에게 발목을 잡힌 몇 몇 물방울들이,
대롱대롱 빛나던 아침이었다.
산자락 아래까지 내려온 안개덕에 당산나무의 자태는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보통 마을을 내려다보는 곳이나, 마을에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잡는 당산나무이지만, 이 나무는 마을로 들어와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 마을이 자리잡은 지세를 알 수 없기에, 지금 위치가 특이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돌로 축대를 동그랗게 쌓고 그 위에 펜스까지 쳐 놓은 것으로 보아, 이 나무에 대한 관리가 제법 잘 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늙은 노송의 연약한 힘을 버팀대가 받쳐주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인간도 늙으면 지팡이가 필요하지 않은가!
버팀목에 기댄 몸이라도 그 가지 뻗어내림은 아직도 힘을 잃지 않은 것 같다.
거창 당산리 당송의 안내문을 살펴보면,
키 14.3m, 가슴높이 둘레 4.1m이고,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송이 이 곳에 자리잡은 유래는 당산리 이 마을이 진주 강씨 집성촌인데, 그 13대 선조가 이 마을에 터를 잡을 때 심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울었다는 전설은 제법 많이 들었었다.
세상이 슬픔에 잠겼는데, 당산나무라고 어찌 안 슬프겠는가.
당산리 당송도 국권을 빼앗긴 때(1910), 광복(1945) 및 한국전쟁(1950) 때에는 몇 달 전부터 밤마다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다른 이름으로 영송(靈松)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월대보름에 아직도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당산나무의 영험한 기운은 지금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세상에 더 이상 슬픈일 없이.......그래서 더 이상 이 당산나무가 슬프게 울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살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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